본문 바로가기
스포츠

누구나 좋아하는 축구에 대해 알아볼까요?

by a_vely 2025. 3. 15.

축구란?

축구

손과 팔 부위를 공에 닿지 않게 하ㅎ란구면서, 주로 발을 이용해 공을 상대의 골대에 넣어 점수를 얻고, 합산한 점수의 우열을 통해 승패를 가리는 구기 스포츠이다. 손과 팔을 공에 닿지 않게 하면서 골대를 사용하는 스포츠는 모두 축구의 변형이거나 아종으로 분류되며, FIFA가 일반 축구와 함께 관리한다. 규격화된 스포츠 가운데에는 풋살, 비치사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축구는 단일 스포츠지만 각 국가별로 이르는 명칭이 서로 다르다. Football, Soccer, 슈큐,칼초 등으로 각 나라마다 명칭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국 축구의 역사

고대부터 공을 차고 노는 구기 스포츠가 전승되어 왔으며 축국이라고 했다. 삼국유사에도 나온다. 이는 신라가 당나라로부터 들여온 것인데 이걸 근거로 중국은 아이들에게 축구의 종주국은 중국이라고 가르친다. 물론 축구와 축국이 비슷할 순 있으나, 그것이 어떤 형태로 있었는지, 또 어떤 규칙이 있었는지 현대에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종주국이라고 부르긴 매우 힘들다. 구한말까지도 축국이 전승되어 오다가 개화기에 들어 현대식 축구가 들어오며, 기존의 축국을 대체했다.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1883년에 인천 항구로 들어온 영국의 해군들이 축구 경기를 했던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당시 축국은 높이 제한이 없는 장대에 망을 쳐놓고, 그 곳에 공을 넣으면 점수를 얻는 것이 규칙이었기에 막 축구가 들어왔을 때에도 축국을 하는 것마냥 뻥뻥 높이 차는 것이 인기였다. 아무튼 당시 조선 사람들에게 축구란 서양 사람들이 하는 축국의 취급을 받았기에 축구도 별 거부감 없이 빠르게 정착할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축구는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적이 있었다. 특히, 일본 팀들을 상대로 격파하는 것을 본 한국인들은 희열감을 느끼고 축구장에 모여들어 독립 정신을 품었다. 일본은 1993년 j리그가 창설되기 전까지 한국에게 역대 성적에서 크게 뒤쳐졌었다.

축구의 탄생

FA가 결성되기 이전의 영국 풋볼은 지역별로 제각각 다른 규칙으로 경기하고 있었다. 1848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이튼 칼리지, 해로우 스쿨, 럭비 스쿨, 윈체스터 및 슈루즈베리 스쿨 출신의 대표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케임브리지 규칙이 작성되어졌다. 하지만 이 규칙은 널리 채택되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1850년대에 많은 클럽들이 학교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거나 대학교들은 다양한 형태의 풋볼을 하는 영어권 국가들을 통해 형성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컬러 TV의 대중화가 시작되고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대회부터 최초의 컬러 TV 방송 중계가 이루어지면서 FIFA를 비롯한 축구 연맹과 각국의 리그는 중계권료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축구는 매우 상업성이 높은 스포츠로 간주되었고 수많은 자본가들이 축구 대회나 리그, 구단, 선수 등 축구에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빅 리그, 빅 클럽의 존재가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축구 자매 종목

풋볼 파생 종목

축구의 자매 종목들로는 첫째, 지금의 축구가 성립되기 전의 손을 써도 되는 풋볼 원형의 계보에서 이어진 것, 즉 각종 풋볼 원형 계열 종목들과 둘째, 현재의 축구에서 파생된 것들로 나뉜다. 풋볼 원형에서  파생된 종목들로는 잉글랜드의 럭비, 미국의 미식축구, 캐나다의 캐나다식 축구, 호주의 오스트레일리안 풋볼, 그리고 아일랜드의 게일릭 풋볼 등이 있다. 현재의 축구에서 파생된 종목들로는 풋살, 비치사커, 사이클볼 등이 있다. 풋볼이라는 같은 기원을 가진 축구, 럭비, 미식축구의 차이와 각각의 핵심 가치는 밑에 표와 같다. 풋볼의 기원은 종합하면 가장 오래된 형태의 축구(와 유사한 놀이)로 인정받는 건 중국의 추쥐(축국)가 맞지만, 이것이 전세계로 퍼져 근대적 스포츠 형태로 정립된 '현대 축구'의 모태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류의 주장들이 흔히 그렇듯 주관적인 해석들도 있어서 결국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다만 축국이 영국이 주창한 현대 축구에 어떤 확실한 영향을 끼쳤다는 기록이나 물증은 아직까진 없다.

풋볼 파생 종목간의 비교

규칙의 제정 / 시설 / 용구

축구의 규칙은 국제축구평의회(IFAB)에서 결정한다. 국제축구평의회는 잉글랜드 축구 협회·스코틀랜드 축구 협회·웨일스 축구 협회·북아일랜드 축구 협회에서 각 1명씩, FIFA의 4명을 합해 총 8인으로 구성되며, 8명 중 6명이 안건에 찬성하면 통과된다. 그리고 의상이나 등번호 정도를 제외하면 로컬 룰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로컬 룰을 만들었다가 FIFA의 제재를 받고 롤백한 건 알려진 사실. IFAB에서 규칙을 제정할 때 국제표준과 국내용을 철저하게 정해둬서 이 안에서만 변형이 이루어진다. 시설 경기장은 반드시 직사각현이어야 하고, 장방형 경기장의 긴 변 (터치라인)을 형성하는 2개의 측선의 길이는 장방형의 경기장을 구획하는 짧은 쪽의 2개의 라인(골라인)의 길이보다 길어야 한다. 길이는 최소 90m, 최대 120m, 너비는 최소 45m, 최대 90m이다. 국제 경기용 경기장의 규격은 길이가 최소 100m에서 최대 110m, 너비는 최소64m에서 최대 75m이다. 경기장의 표시는 명확한 선으로 긋는다. 모든 선의 폭은 12cm를 넘지 않아야 한다. 경기장은 중앙선에 의하여 둘로 나누어지고 센터 서클은 반지름이 9.15m인 원을 그려 표시한다. 용구를 알아보면 선수는 다른 선수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을 몸에 지녀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선수는 상의, 하의, 양말, 정강이 보호대, 신발, 골키퍼용 장갑을 착용할 수 있을 뿐, 쇠장식이 붙은 벨트나 시계, 반지 등은 몸에 지닐 수 없다. 축구화에도 일정한 기준이 있으므로 기준에 맞는 것을 사용해야 한다. 축구공은 완전한 구형으로 외피에는 가죽을 사용한다. 구조상 선수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물질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바깥둘레는 27인치(68cm)~28인치(70cm)이고 무게는 14온스(410g)에서 16온스(450g)이다. 공기 압력은 해면에서 0.6 기압 이상, 1.1기압 이하여야 한다. FIFA 공식경기, 대륙 연맹, 국가 협회주관 경기에서 대회 혹은 주최 측의 상징, 볼 제조자의 상표를 제외하고 볼에 어떠한 종류의 상업적 광고도 허용되지 않는다. 대회 규정에 마크의 크기와 숫자를 제한할 수 있다.